[정경의 오페라 9단]돈 조반니, 그 결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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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perama 작성일2016-09-27 조회5,981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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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 정경 논설위원 = 모차르트가 본래 염두에 두었던 오페라 '돈 조반니'의 제목은 '처벌된 난봉꾼'이었다. 결말에서 지옥으로 끌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염두에 둔 제목이었다.
권선징악의 표본이나 다름없는 이야기 전개임에도 이 결말 장면은 작품에서 다소 모호한 형태로 그려진다. 전형적인 권선징악 이야기라면 주인공인 돈 조반니는 최대한 볼품없고 비참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돈 조반니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비굴한 기색 없이 회개를 종용하는 석상의 요구를 거절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의 자기 삶을 전적으로 긍정하며 이를 부정할 바에는 죽음을 택하겠다고까지 말한다. 수없는 악행을 저질러놓고도 이토록 당당한 악인은 당시 사회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캐릭터였다.
때문에 그의 죽음이 풍기는 감상은 권선징악의 후련함보다는 비극적인 정서를 머금고 관객들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서 도덕이 살아있다거나 정의가 구현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일종의 애증과 함께 매력적이고 마성적인 등장인물의 죽음에 슬픔을 느낄 정도였다.
오페라 '돈 조반니'의 결말에서 비롯되는 이 모호한 느낌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가 어렵지 않게만 여겨 온 타락한 귀족 돈 조반니의 죽음은 과연 '천벌'인 것일까? 이러한 의문들은 오페라 '돈 조반니'의 결말에 대한 해석과 작품 전체에 대한 해석을 분분하게 만든다.
가장 일반적인 시각을 이야기해보자. 주인공인 돈 조반니를 그저 타락한 귀족으로 해석한다면 그에게 죽임을 당해 유령이 된 코멘다토레의 복수는 가장 필연적이고 도덕적으로 합당한 귀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귀족과 평민이 서로 화해하는 결말을 선보였지만 알마비바 백작보다 한결 더 악독했던 돈 조반니에겐 좀 더 가혹하고 엄한 처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나와 오타비오가 돈 조반니를 쫓으며 복수하려하지만 귀족 사회에서 그를 처벌하는 것은 작품의 사회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연히 신분제도가 엄수되고 있는 당시 사회 분위기상 대놓고 평민인 마세토나 체를리나가 귀족 영주인 조반니를 처벌할 수도 없었다. 이는 신분제를 뒤엎는 하극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심판자의 존재가 신의 대리인과 같은 초월적인 지위를 의미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코멘다토레의 석상과 유령은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모든 율법 위에 위치한 신의 의지를 대행하는 자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귀족도 교수대에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시대였기 때문이다.
신이 돈 조반니를 처벌하겠다고 표명했다면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어지며, 그러한 의지에 대항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악인'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조반니는 평소의 행실과 더불어 신의 의지에 반하는 절대악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결말에 나타나는 비장함과 엄숙함에는 절대자의 개입을 권능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모차르트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또 다른 시각으로는 돈 조반니의 참회 거부가 곧 자유 의지에 대한 주권 행사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중세 시대의 신분제 질서는 곧 교회의 질서였다. 따라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자유와 박애사상을 전파하던 계몽주의자들이 타도해야 할 대상은 바로 교회였던 것이다. 이미 부패와 타락, 비논리적인 폭력을 거듭한 기존 교회에 대해 계몽주의자들은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신의 의지를 대변한다는 교회마저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인간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석상으로 대변되는 신의 의지는 구습, 악습에 불과했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꺾어버리는 억압적인 폭력과 쇠창살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돈 조반니는 더 이상 극악무도한 악당이 아닌 계몽주의자들의 염원이 투영된 일종의 화신(avatar)이다. 비이성적인 짓을 자행해오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포를 조장하던 종교에 항거하는 동시에,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믿으며 외부의 억압과 강제력에 당당히 맞서는 것.
돈 조반니가 지옥으로 끌려가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비극미는 신에게, 혹은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 구조에 저항하는 한 인간의 좌절이 당대 사회 구성원들에게 불러오는 집단 무의식적 감상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무한한 결말을 지닌 오페라 '돈 조반니'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뛰어넘어 훨씬 더 진보적이며 파격적인 사상과 시각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어지는 제9화에서는 《빈센초 벨리니, 그리고 오페라 『노르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정경 뉴스인 논설위원은 바리톤 성악가로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소장,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오페라마 시각(始覺)’, ‘예술상인’이 있다.
▶기사제보 newsin@newsin.co.kr
<저작권자 © 국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권선징악의 표본이나 다름없는 이야기 전개임에도 이 결말 장면은 작품에서 다소 모호한 형태로 그려진다. 전형적인 권선징악 이야기라면 주인공인 돈 조반니는 최대한 볼품없고 비참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돈 조반니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비굴한 기색 없이 회개를 종용하는 석상의 요구를 거절한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의 자기 삶을 전적으로 긍정하며 이를 부정할 바에는 죽음을 택하겠다고까지 말한다. 수없는 악행을 저질러놓고도 이토록 당당한 악인은 당시 사회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캐릭터였다.
때문에 그의 죽음이 풍기는 감상은 권선징악의 후련함보다는 비극적인 정서를 머금고 관객들에게 다가갔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서 도덕이 살아있다거나 정의가 구현되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일종의 애증과 함께 매력적이고 마성적인 등장인물의 죽음에 슬픔을 느낄 정도였다.
오페라 '돈 조반니'의 결말에서 비롯되는 이 모호한 느낌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가 어렵지 않게만 여겨 온 타락한 귀족 돈 조반니의 죽음은 과연 '천벌'인 것일까? 이러한 의문들은 오페라 '돈 조반니'의 결말에 대한 해석과 작품 전체에 대한 해석을 분분하게 만든다.
가장 일반적인 시각을 이야기해보자. 주인공인 돈 조반니를 그저 타락한 귀족으로 해석한다면 그에게 죽임을 당해 유령이 된 코멘다토레의 복수는 가장 필연적이고 도덕적으로 합당한 귀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귀족과 평민이 서로 화해하는 결말을 선보였지만 알마비바 백작보다 한결 더 악독했던 돈 조반니에겐 좀 더 가혹하고 엄한 처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안나와 오타비오가 돈 조반니를 쫓으며 복수하려하지만 귀족 사회에서 그를 처벌하는 것은 작품의 사회적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엄연히 신분제도가 엄수되고 있는 당시 사회 분위기상 대놓고 평민인 마세토나 체를리나가 귀족 영주인 조반니를 처벌할 수도 없었다. 이는 신분제를 뒤엎는 하극상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심판자의 존재가 신의 대리인과 같은 초월적인 지위를 의미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코멘다토레의 석상과 유령은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존재이다. 모든 율법 위에 위치한 신의 의지를 대행하는 자라면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귀족도 교수대에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시대였기 때문이다.
신이 돈 조반니를 처벌하겠다고 표명했다면 더 이상 논란의 여지가 없어지며, 그러한 의지에 대항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악인'이 되는 것이었다. 결국 조반니는 평소의 행실과 더불어 신의 의지에 반하는 절대악으로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결말에 나타나는 비장함과 엄숙함에는 절대자의 개입을 권능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모차르트의 노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또 다른 시각으로는 돈 조반니의 참회 거부가 곧 자유 의지에 대한 주권 행사라고 보는 해석이 있다.
중세 시대의 신분제 질서는 곧 교회의 질서였다. 따라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자유와 박애사상을 전파하던 계몽주의자들이 타도해야 할 대상은 바로 교회였던 것이다. 이미 부패와 타락, 비논리적인 폭력을 거듭한 기존 교회에 대해 계몽주의자들은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었고, 신의 의지를 대변한다는 교회마저 개혁의 대상으로 간주하기에 이른다.
인간 중심의 세상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석상으로 대변되는 신의 의지는 구습, 악습에 불과했으며, 인간의 자유의지를 꺾어버리는 억압적인 폭력과 쇠창살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돈 조반니는 더 이상 극악무도한 악당이 아닌 계몽주의자들의 염원이 투영된 일종의 화신(avatar)이다. 비이성적인 짓을 자행해오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포를 조장하던 종교에 항거하는 동시에,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믿으며 외부의 억압과 강제력에 당당히 맞서는 것.
돈 조반니가 지옥으로 끌려가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비극미는 신에게, 혹은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 구조에 저항하는 한 인간의 좌절이 당대 사회 구성원들에게 불러오는 집단 무의식적 감상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논란의 여지가 무한한 결말을 지닌 오페라 '돈 조반니'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뛰어넘어 훨씬 더 진보적이며 파격적인 사상과 시각을 드러내는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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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제9화에서는 《빈센초 벨리니, 그리고 오페라 『노르마』》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정경 뉴스인 논설위원은 바리톤 성악가로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소장,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오페라마 시각(始覺)’, ‘예술상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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