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의 오페라 9단] 바그너의 고뇌와 갈등 담긴 '탄호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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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perama 작성일2017-05-09 조회4,94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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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파리에서 초연에 오른 오페라 '탄호이저'는 처참한 실패를 경험한다. 발레 장면이 제2막이 아닌 제1막에 삽입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당시 프랑스에는 자키클럽이라는 부유층만의 사교 모임이 존재했다. 귀족, 부르주아, 이름을 날린 예술가 등 명망 있는 집안 자제들의 모임이었다. 젊은 나이부터 퇴폐한 문화와 음주가무에 흠뻑 빠져 있던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유흥가를 전전하거나 파티를 열며 환락을 즐겼다.
그들이 벌이는 주된 여흥거리 중 하나는 바로 파리의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오페라를 관람하는 가장 큰 목적은 예술작품의 감상이나 궁극적 예술의 추구가 아닌 오페라에 출연하는 발레리나에게 접근할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페라 극장의 가장 비싼 박스석을 차지하고서는 커다란 크기의 쌍안경으로 무대 위의 발레리나를 지켜보았다.
발레 장면이 오페라의 제2막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긴 것도 이들 때문이었다. 이 사교클럽의 도련님들은 평소 저녁식사를 느긋하게 마치고 극장에 도착하곤 했는데, 이는 늘 오페라의 제2막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배가 부른 채로 객석에 앉은 그들은 무대 위 발레리나들의 품평회를 열곤 했다.
부유했던 그들은 스스로가 예술의 후견인임을 자처했다. 그리고 당시 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를 제외한 평단원은 입에 풀칠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자키클럽의 멤버들은 공연 중간중간의 휴식 시간마다 박스석으로 발레리나를 불러들이거나 극장 밖으로 꾀어내어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이에 한 술 더 떠 자키클럽 회원들은 백스테이지 출입의 허락을 받기에 이른다. 이는 이른바 공연 관련 VIP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자키클럽의 남성들은 서슴없이 대기실을 들락거리면서 평소 눈독을 들이던 발레리나에게 추파를 던지곤 했다. 이러한 상황이 일상화되다 보니 당시 파리의 발레 교사들은 제자에게 발레란 '도발적인 포즈와 자태로 관객을 흥분시키는 예술'이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한편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파리 공연은 그러한 특권층의 욕구를 무참히 파괴해버리는 작품이었다. 바그너가 발레 장면을 제1막에 배치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자키클럽의 멤버들은 기세등등하게 극장으로 몰려와 1막 시작 전부터 객석에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며 야유를 퍼부었고, 결국 주먹다짐까지 발생했다. 공연을 망치기 위해 계획된 행동이었던 것이다.
초연 사흘째에는 이러한 난동으로 인해 공연이 15분씩 여러 차례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난감했던 극장 측에서는 대책을 강구해야 했고, 결국 극장장은 바그너에게 공연의 일괄 취소를 통보하고 만다.
◇ 탄호이저, 설화와 오페라 사이
바그너는 오페라 제작을 위해 설화 '탄호이저'에 비극적 색채와 숭고함의 미학을 덧붙였다. 설화 속 탄호이저는 오페라의 등장인물에 비해 상당히 포기가 빠른, 요즘말로 하면 쿨한 인물이었다. 순례 길에 오르지만 그 길의 끝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곧바로 베누스의 세계로 돌아가는 점이 특히 그렇다. 반면 오페라의 탄호이저는 베누스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특히 강조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예술가'로서의 탄호이저다. "나도 행복하다고 말해도 될 거요(Auch ich darf mich so glücklich nennen)"로 시작되는 노래 경연은 그야말로 서로 다른 예술관이 부딪히는 격렬한 예술 토론이자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음유시인들은 사랑에 대한 각자의 신념과 철학을 노래에 담아낸다.
그중에서도 탄호이저는 당대의 사고방식과 윤리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노래를 부르고, 이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신념을 노래한 일로 인해 강제로 순례 길에 오른다. 바로 이 부분에서 바그너는 남들과는 다른 생각과 표현을 하는 예술가로서의 창작 행위와 사고방식이 '죄'가 되어버리는 현실을 꼬집고 있었다.
오페라에 드러난 탄호이저의 이러한 새로운 모습은 바그너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주입한 결과이기도 했다. 바그너는 태어난 이래로 한 곳에 정착해 살아본 적이 없었다. 생계 문제, 정치색으로 인한 수배, 끊임없는 논란 등으로 인해 유럽 각국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것이다. 또한 다른 음악가를 공격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공격을 받기도 했다.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던 바그너는 당대 독일에서 가장 진보적인 음악을 추구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오페라 속 탄호이저와 현실 속에서의 바그너는 상당 부분 닮아있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강조된 또 다른 부분은 베누스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대립이다. 에로스적인 것과 플라토닉함. 욕망과 이성. 그리스, 로마적인 것과 기독교적인 세계. 끝없이 이분화되는 두 차원 사이에서 탄호이저는 만족을 얻지 못한다. 베누스의 미궁에선 쾌락이 지겨워 현실 세계로 돌아가길 원했고, 현실 세계에선 사회의 윤리와 관습에 좌절한 채 다시 베누스의 미궁을 갈망했다. 이러한 탄호이저의 딜레마에는 바그너 자신이 예술과 철학을 추구하면서 겪은 고뇌와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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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에는 자키클럽이라는 부유층만의 사교 모임이 존재했다. 귀족, 부르주아, 이름을 날린 예술가 등 명망 있는 집안 자제들의 모임이었다. 젊은 나이부터 퇴폐한 문화와 음주가무에 흠뻑 빠져 있던 그들은 날이면 날마다 유흥가를 전전하거나 파티를 열며 환락을 즐겼다.
그들이 벌이는 주된 여흥거리 중 하나는 바로 파리의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이들이 오페라를 관람하는 가장 큰 목적은 예술작품의 감상이나 궁극적 예술의 추구가 아닌 오페라에 출연하는 발레리나에게 접근할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그들은 오페라 극장의 가장 비싼 박스석을 차지하고서는 커다란 크기의 쌍안경으로 무대 위의 발레리나를 지켜보았다.
발레 장면이 오페라의 제2막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생긴 것도 이들 때문이었다. 이 사교클럽의 도련님들은 평소 저녁식사를 느긋하게 마치고 극장에 도착하곤 했는데, 이는 늘 오페라의 제2막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배가 부른 채로 객석에 앉은 그들은 무대 위 발레리나들의 품평회를 열곤 했다.
부유했던 그들은 스스로가 예술의 후견인임을 자처했다. 그리고 당시 발레단에서 수석 무용수를 제외한 평단원은 입에 풀칠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자키클럽의 멤버들은 공연 중간중간의 휴식 시간마다 박스석으로 발레리나를 불러들이거나 극장 밖으로 꾀어내어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이에 한 술 더 떠 자키클럽 회원들은 백스테이지 출입의 허락을 받기에 이른다. 이는 이른바 공연 관련 VIP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자키클럽의 남성들은 서슴없이 대기실을 들락거리면서 평소 눈독을 들이던 발레리나에게 추파를 던지곤 했다. 이러한 상황이 일상화되다 보니 당시 파리의 발레 교사들은 제자에게 발레란 '도발적인 포즈와 자태로 관객을 흥분시키는 예술'이라고 강조할 정도였다.
한편 바그너의 오페라 '탄호이저' 파리 공연은 그러한 특권층의 욕구를 무참히 파괴해버리는 작품이었다. 바그너가 발레 장면을 제1막에 배치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자키클럽의 멤버들은 기세등등하게 극장으로 몰려와 1막 시작 전부터 객석에 앉았다.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며 야유를 퍼부었고, 결국 주먹다짐까지 발생했다. 공연을 망치기 위해 계획된 행동이었던 것이다.
초연 사흘째에는 이러한 난동으로 인해 공연이 15분씩 여러 차례 중단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난감했던 극장 측에서는 대책을 강구해야 했고, 결국 극장장은 바그너에게 공연의 일괄 취소를 통보하고 만다.
◇ 탄호이저, 설화와 오페라 사이
바그너는 오페라 제작을 위해 설화 '탄호이저'에 비극적 색채와 숭고함의 미학을 덧붙였다. 설화 속 탄호이저는 오페라의 등장인물에 비해 상당히 포기가 빠른, 요즘말로 하면 쿨한 인물이었다. 순례 길에 오르지만 그 길의 끝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곧바로 베누스의 세계로 돌아가는 점이 특히 그렇다. 반면 오페라의 탄호이저는 베누스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한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특히 강조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예술가'로서의 탄호이저다. "나도 행복하다고 말해도 될 거요(Auch ich darf mich so glücklich nennen)"로 시작되는 노래 경연은 그야말로 서로 다른 예술관이 부딪히는 격렬한 예술 토론이자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음유시인들은 사랑에 대한 각자의 신념과 철학을 노래에 담아낸다.
그중에서도 탄호이저는 당대의 사고방식과 윤리관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노래를 부르고, 이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신념을 노래한 일로 인해 강제로 순례 길에 오른다. 바로 이 부분에서 바그너는 남들과는 다른 생각과 표현을 하는 예술가로서의 창작 행위와 사고방식이 '죄'가 되어버리는 현실을 꼬집고 있었다.
오페라에 드러난 탄호이저의 이러한 새로운 모습은 바그너 자신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주입한 결과이기도 했다. 바그너는 태어난 이래로 한 곳에 정착해 살아본 적이 없었다. 생계 문제, 정치색으로 인한 수배, 끊임없는 논란 등으로 인해 유럽 각국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것이다. 또한 다른 음악가를 공격하기도 하고 이로 인해 공격을 받기도 했다.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었던 바그너는 당대 독일에서 가장 진보적인 음악을 추구하던 인물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오페라 속 탄호이저와 현실 속에서의 바그너는 상당 부분 닮아있었다.
바그너의 오페라에서 강조된 또 다른 부분은 베누스의 세계와 현실 세계 사이의 대립이다. 에로스적인 것과 플라토닉함. 욕망과 이성. 그리스, 로마적인 것과 기독교적인 세계. 끝없이 이분화되는 두 차원 사이에서 탄호이저는 만족을 얻지 못한다. 베누스의 미궁에선 쾌락이 지겨워 현실 세계로 돌아가길 원했고, 현실 세계에선 사회의 윤리와 관습에 좌절한 채 다시 베누스의 미궁을 갈망했다. 이러한 탄호이저의 딜레마에는 바그너 자신이 예술과 철학을 추구하면서 겪은 고뇌와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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