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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춘향전

사랑의 보편성과 역사성

[ 春香傳 ]

전근대 사랑의 아이콘: 양반 남성과 기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문학은 지속적으로 인간의 사랑을 노래하고 이야기해왔다. 조선시대의 문학 역시 사랑을 형상화하는 많은 작품들을 남기고 있는데, 『춘향전』은 이러한 남녀 간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후기에 양산된 사랑의 서사들을 보면, 남자 주인공은 주로 양반 남성인데 반해 여주인공은 많은 경우 천민인 기녀였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남녀의 성애(性愛)를 소재로 하는 수많은 염정시(艶情詩)1)는 기녀를 주된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로맨스의 주인공 역시 기녀이다. 여기서 "왜 사랑의 주체들이 같은 계층 출신의 남녀가 아니었으며, 신분적 차별이 심했던 시기에 왜 양반 남성들은 사랑의 대상으로 천민여성인 기녀를 선택하였을까?" 하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조선시대의 기녀는 '여악(女樂)'이라는 공식적 직함 속에서 궁중의 잔치나 지방 관아의 각종 의례에 참가했던 공식 예인(藝人)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여타 남성 예인들, 즉 양인 또는 천민 남성들로 구성된 악공(樂工)이나 악생(樂生)들이 관(官)이 요구하는 기예의 연행을 주된 임무로 했던 것과는 달리, 기녀 집단은 천민 '여성'이라는 조건 속에서 지배층 남성들의 연회에 사사로이 동원되었으며 때로는 성적 봉사를 수행하는 직역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기녀가 처한 조건은 신분적으로, 성적으로 타자였던 특수층 여성들을 결혼 제도 밖에 배치하여 활용하였던 전근대사회 유희문화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그런데 신분제의 작동으로 인해 가능했던 이러한 전근대문화 속에서 기녀는 양반 남성들의 풍류를 매개하면서 상층부 문화의 예술적, 유희적 감각을 획득하고, 지적인 교양과 기지를 바탕으로 지배층 사교 문화에 동참하였던 유일한 여성 집단이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양반 남성들과의 사적인 교류를 통해서 가족 제도 안에서는 공공연하게 표출할 수 없었던 성애(性愛)를 체험한 주인공들이다. 그 결과 양반 신분의 남성과 기녀는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신분제와 유교적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한 전근대식 사랑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사회 문화적인 배경 속에서 기생 '춘향'과 양반 자제 이몽룡의 사랑을 소재로 한 『춘향전』이 탄생하게 된다.

조선 후기의 베스트셀러, 『춘향전』에 대한 새로운 접근

『춘향전』은 양반 자제 이몽룡과 기생의 딸 춘향 사이의 신분적 한계를 초월한 사랑을 극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조선후기 당대는 물론 현대에까지 지속적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2) 일찍이 김태준3)은 『조선소설사』(1932)에서 조선시대 후기 이후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던 『춘향전』을 '조선의 『홍루몽』'이라 칭하였다. 또한, 그는 『춘향전』을 중국 문예의 최대 걸작인 『홍루몽』에 비교하면서, "조선인의 생활을 경제, 정신 양면으로 통틀어 볼 수 있는 소위 '사회백과사전'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춘향전』이 수세기에 걸쳐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이유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춘향전』은 남녀 간의 열정적인 사랑과 그러한 관계를 영원히 지속하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제기함으로써 시대를 넘어선 공감을 획득하고 있다. 춘향과 이몽룡이 첫날밤 백년언약을 하는 자리에서, 죽어서 '오리나무'와 '칡넝쿨', '음양수'와 '원앙새', '인경'과 '망치', '암톨쩌귀'와 '수톨쩌귀'가 되어서라도 떨어지지 않고 천년만년 함께 살자고 맹세하는 대목은 기발하고 절묘한 비유가 주는 감흥과 더불어, 남녀 간의 영원한 사랑이 얼마나 절실한 인간세상의 보편적 염원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춘향전』의 또 다른 매력은 조선시대 신분제 속에서 양반, 중간 계층, 서민, 기생 등이 관계 맺는 양상을 보여줌과 더불어, 신분제 내부의 수직적 위계를 전복시키는 풍자와 해학의 목소리들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일 것이다. 광범위한 고사 인용과 한문 상투어구들이 녹아있는 『춘향전』은 양반층 지식인 작가의 학식과 문학적 교양을 바탕으로 하는 한편, 방자와 월매, 농부 등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기층민의 익살스럽고 발랄한 목소리들을 교차시키고 있다. 이러한 『춘향전』은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며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던 성공적인 문학 텍스트였을 뿐 아니라, 김태준의 지적과 같이, 조선후기 풍속의 역동적인 이면을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춘향전』은 독자 대중뿐 아니라 문학 연구자들에게도 크나큰 관심과 사랑을 받은 고전으로서 지금까지 수백 편의 연구 논문이 양산되었다. 이러한 기존 논의들은 『춘향전』의 주제에 대해 춘향과 이도령 사이의 변치 않는 애정, 춘향의 이도령에 대한 지고지순한 정절, 춘향을 통해 대변되는 부패한 관리 계층에 대한 하층민의 항거, 전근대 신분제의 모순에 저항하는 민중의 의지 등을 지적하였으며, 기녀로서의 춘향의 신분상승 욕구를 제기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춘향전』의 주제가 남녀간 사랑의 영원성, 정절의 절대적 가치, 신분적 질곡과 인간해방 등의 보편 논리로 환원되는 과정에서 소홀히 되었던 작품 안팎의 다양한 역사성에 대해 새롭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적 보편의 문제는 늘 특정 시대나 문화권 속에 작동되는 역사적 형식을 통해 발현되어 왔기 때문이다. 『춘향전』 역시 남녀 간의 사랑이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등의 문제를 조선후기의 특수한 사회적 기반 속에서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춘향전』을 통해 사랑의 보편성과 불멸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작업을 넘어서, 결혼제도와 분리된 영역에서 이루어졌던 당대 사랑의 역사적 의미를 탐색하고, 그들의 사랑이 조선시대 관습적 사랑의 공식에 어떠한 방식으로 균열을 야기하는지를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지금까지 『춘향전』은 작품 내재적 차원에서 '사랑'과 '정절', '신분의식 및 인간 해방' 등과 관련하여 논의되었지만, 이에 대한 해석들은 다분히 주인공 '춘향'을 바라보는 자의 이념이나 욕망이 투사되어 있는 외부적 시선의 결과물이었다는 점도 새롭게 사유해 볼 필요가 있다. 탐관오리 변학도의 수청 요구에 대해 춘향은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항변한다.

『춘향전』의 무대가 되었던 남원의 광한루.

"소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열녀의 마음을 따를 것이오니 ··· 죽으면 죽었지 분부 시행 못하겠소. 정절은 양반 상놈이 없사오니 억지말씀 마옵소서." ··· "이부불경(二夫不敬) 이 내 마음, 이군불사(二君不事)와 무엇이 다르리까? 삼종지도(三從之道) 중한 법을 삼생에 버리리까?"

여기서 두 남편을 섬기지 않음을 선언하고 '삼종지도'를 주창하는 춘향의 모습은 어느 규방의 순결한 아녀자와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러한 춘향의 정절의식은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대에까지 천한 기생이었던 춘향이 규범적 세계로부터 지속적으로 환대를 받으며 긍정적인 인물로 살아있게 한 중요한 자질로 기능한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절개를 지키고자 한 춘향에 대해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기녀'로서의 실존적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춘향을 '열녀'로만 숭앙하고자 하는 시선은, 신분적·성별적 타자성(他者性)을 무화시킨 채 유교적 가치를 '보편'의 이름으로 절대화하였던 지배 담론의 이념적 지향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한편으로, 이러한 춘향의 목소리는 양반 계층의 권력에 맞서는 민중의 저항적 계급의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하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춘향은 '민중'이라는 또 다른 집단적 표상 속에 묻혀버린다. 이러한 춘향의 사회적 표상에 대한 해석들은 춘향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라기보다는 양반 및 서민 계층 각각의 시선이 투사된 복합적 욕망의 산물임을 지적할 수 있다.
따라서 춘향의 역할을 다시 해석하여 타자로서의 기녀 춘향의 시선과 욕망을 복원하고, 『춘향전』의 기저에 깔린 조선 후기 사회의 욕망의 구조를 보다 새롭게 읽어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일시적인 만남에 머물렀던 기생과 양반 간의 사랑이 행복한 결실을 맺고, 또 춘향이 기생첩의 신분에 머물지 않고 정실부인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 비현실적인 서사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가? 상층부 양반 여성들에게 요구된 성규범인 '정절'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기녀 춘향의 욕망은 무엇이며, '열녀 기녀'라는 이율배반적인 존재성이 지니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욕망의 사회학: 전근대 사회의 에로티시즘과 기녀의 정절

신분제와 유교적 가부장제가 근간이 되었던 조선시대에 여성의 섹슈얼리티4)는 신분에 따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규정되었다. 양반 여성들의 경우, 자식을 낳아 가문을 잇는 재생산(reproduction)의 기능 이외에 그들의 몸과 섹슈얼리티는 강력하게 통제되었다. 여성의 '정절'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구체적 현현인 '열녀'의 탄생은 양반 여성의 성규범을 대표하는 요소들이다. 한편, 가족제도 속에서 요구되지 않았던 성애(性愛)는 가족 밖의 기녀라는 여성 집단을 통해 충족되었다. 여악(女樂)이라는 공식적 기능 이외에, 기녀는 지배층 양반 남성들의 사적 모임에서 풍류를 매개하고, 섹슈얼리티를 공급하는 또 다른 기능을 요구받았던 것이다. 이때 기녀의 섹슈얼리티는 불특정 다수의 양반들에 의해 끊임없이 향유되는 것이었으며, 이는 관비로서 기녀가 수행해야 할 직역(職役)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가족제도 밖의 풍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양반 남성과 기녀 사이의 에로티시즘은 전근대적 신분제 사회가 양산한 사랑의 특수한 양식이었으며, 이러한 조건 속에 있는 기녀에게 '정절'을 요구하는 것은 자가당착적인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많은 소설 속에는 정절 의식으로 무장한 정숙한 기녀들이 빈번히 등장하며, 때로는 구관 사또에 대한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열녀 기녀들이 탄생하기도 한다. 춘향 역시 이러한 당대 소설의 경향을 반영하는 인물이자, 열녀적 성향을 지닌 기녀의 전형으로서 논의될 만하다. 그런데 기녀로서의 춘향은 일반 사대부 계층의 열녀와는 질적으로 다른 지점에 있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네 인물 네 태도는 천만고에 무상(無雙)일다. 안거라, 보자. 서거라, 보자. 쌍긋 웃어라, 잇속을 보자. 아장아장 거닐어서 백만교태 다 부려라."

이몽룡과 첫날밤을 보내면서 사랑놀음을 할 때, 이몽룡을 한 눈에 사로잡아버리는 춘향의 교태로움과 성적 매력은 당시 양반에 대한 향응의 의무를 가진 기녀에게 요구된 전형적인 자질이었다. 또한 첫날밤에 춘향이 이몽룡으로부터 받아낸 '불망기(不忘記)'5)는 양반과의 관계에서 소모적인 유희의 대상으로 자리했던 기녀 집단의 사회적 조건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이몽룡과의 이별 후, 변학도의 수청을 거절하고 이몽룡에 대한 절개를 지키고자 목숨을 무릅쓰는 춘향의 모습은 어느 규방의 아녀자보다 더 정숙하고 강인한 도덕적 의지를 보인다. 이렇게 상반된 이미지가 공존하는 춘향의 자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는 바로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유교적 가부장제가 배태한 여성성의 새로운 역사적 징후라 할 수 있다. '기녀'가 '열녀'가 되는 이율배반적인 현상 속에는 일차적으로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기층민에까지 확대되고 수용된 유교 이념의 헤게모니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유교적 가치와 미적 감각을 신분적으로 비천한 기녀 계층에게도 요구하여 이를 향유하고자 한 양반층 남성들의 또 다른 욕망을 읽어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열녀지향적인 기녀의 이미지 속에는 지배층의 윤리와 기호를 수용하고 내재화하여 자신들의 사회적 입지를 상승시키고자 한 기녀들의 현실적 욕망이 동시적으로 교차하고 있다.

『춘향전』의 내용을 그린 상상도.

정숙함과 음란함은 가부장제사회가 양산해 온 여성에 대한 전형적인 이중기준(double standard)이며, 기녀는 바로 음란함의 지표를 지닌 여성 집단이었다. 그런데 춘향으로 대표되는 조선후기 문학에 나타나는 정숙한 기녀 이미지 속에는 당대 사회가 오랫동안 구축해놓은 여성 섹슈얼리티의 이분법이 일시적으로 해체되고 있어 흥미롭다. 기녀의 시선과 욕망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기녀의 정절은 사대부 문화의 가치를 내재화함으로써 양반 남성의 사랑을 얻고, 전근대 결혼 제도 속으로 편입되어 신분적 타자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기녀집단의 절실한 실존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교태로우면서도 정숙한 기녀의 이중적 이미지는 신분에 따라 달리 요구된 조선시대 여성의 이분화, 즉 '정숙한 사대부 여성'/ '음란한 기녀'의 구도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과 성애를 분리시킨 채 작동시켜온 전근대사회적 욕망의 메카니즘이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점차적으로 균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문학의 형식을 통해 유희의 대상으로서의 기녀가 혼인의 대상으로도 허용되는 지점은, 일시적으로 그리고 가족 밖에서 파편적으로 추구된 에로스의 욕망을 결혼 제도 속으로 끌어와, 이를 보다 항구적으로 지속시키고자 한 전근대 사회의 새로운 열망을 제기하고 있어 주목된다.

열린 텍스트로서의 『춘향전』

역사적으로 『춘향전』은 결혼과 사랑이 분리되었던 전근대 사회의 욕망의 공식을 이탈하여, 공식 결혼제도와 에로스의 결합을 승인하고 꿈꾸었던 당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기생이 추구하였던 정실부인에의 욕망은 기생 자신들의 신분 상승의 욕구를 넘어서, 조선시대 일반 대중의 내면에 자리 잡은 새로운 사랑의 공식을 반영하고 있어 더욱 흥미롭다. 그런데, 이렇게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새로운 사랑의 공식을 제기하는 『춘향전』에 대해 초기 계몽주의자들의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개화 초기, 신소설 작가들은 근대 계몽주의의 시선에서 고대 소설을 비판하였는데, 개화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춘향전』은 이해조의 신소설 『자유종』(1910)에서 '음탕 교과서'로 가치 절하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근대 금욕주의적 시선은 1920년대 이후 춘향을 '열녀'적 이미지로 고정시키고 이를 더욱 강화시키게 된다. 이때 근대 이전의 다양한 이본들에서 발견되는 기생 춘향의 유희주체로서의 자질은 탈각되고, 춘향은 여성의 절개를 대변하는 '정절의 화신'으로 탈바꿈한다.
이렇게 전근대와 근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재구성되는 춘향의 이미지는 당대 사회의 지배 이념과 깊은 관련을 가지며, 공식 담론 속에서 춘향의 정절은 여성의 규범을 제시하는 모델로서 지속적으로 전유되어 왔다. 하지만 『춘향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남녀간의 사랑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문학의 범주를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화 생산의 모체로 자리하고 있다. 이해조6)에 의해 『옥중화(獄中花)』(1912)라는 이름의 신소설 형식으로 편작된 이후, 『춘향전』은 근대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근대 소설의 양식 속에서 다양한 얼굴로 부활해 왔다. 또한 영화·창극·현대시 등 다양한 매체와 장르를 통해서도 춘향은 끊임없이 변용되어 왔다. 이처럼 문화 전반에 걸쳐 춘향은 인간의 에로스에 대한 긍정과 사랑의 절대성을 상징하는 원형적 인물이면서, 나아가 자신의 유희적 욕망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주체적인 여성상으로 재생산되기도 하였다.

『춘향전(春香傳)』의 이본(필사본) 가운데 하나.

고전은 특정한 시공간에 제한되는 역사적 산물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창조의 보고로서 그 의미를 가진다. 『춘향전』은 사랑과 관련하여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고전이면서, 근대를 새롭게 사유하게 하는 전근대문화의 소중한 역사적 지표이다. 그리고 문학의 범주를 넘어 이제 『춘향전』은 무한한 문화 텍스트를 양산해낼 수 있는 창조의 원천으로 자리하고 있다. 사랑의 보편성과 역사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춘향전』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롭게 등장할 미래의 열린 텍스트로 여전히 우리 앞에 놓여있다.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발생론적으로 판소리 장르와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는 『춘향전』은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가 공존하는 '다성성(多聲性)'을 특징으로 한다. 엄격한 신분적 위계가 작동되는 전근대 사회에서, 상이한 미의식을 가진 문화적 경계를 깨고 다양한 계층의 작가와 독자들이 작품의 생산과 향유에 가담한 『춘향전』과 같은 역동적인 텍스트가 산출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자.

2. 춘향이라는 인물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그 사회 내부의 이념적 지향성에 따라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는 여성이다. 『춘향전』의 이본 가운데는 춘향이 기생으로서 규범에 구속되지 않는 발랄한 민중 의식을 반영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반면, 완판 『84장본 열녀춘향수절가』나 신재효의 판소리 '남창'의 경우에는 기생이 아닌 양반의 서녀로 등장하여 여염집 규수의 이미지를 지닌다. 이렇게 조선시대 후기의 다양한 이본에서뿐 아니라 근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변신하고 있는 춘향의 이미지가 작가(편저자)의 의식이나 당대 사회의 지배적 규범과 어떠한 관련을 지니며 통시적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생각해 보자.

3.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은 신분제와 유교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전근대식의 사랑을 대변한다. 이와 비교하여, 신분적이고 성적인 평등을 기반으로 하며 사랑과 결혼이 제도 속에 조화롭게 결합되는 근대적 사랑의 공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추천할 만한 텍스트

『춘향전 - 완판 84장본 열여춘향슈절가』, 이가원 역주, 태학사, 1995.
『춘향전』, 한국고전편집위원회 편, 장락, 2000.
『이고본(李古本) 춘향전』, 성현경 역주, 열림원, 2001.

각주

  • 1) 조선시대 남녀간의 성애를 다룬 염정시에는 양반들이 기생을 소재로 하여 쓴 연시(戀詩)와 기생들에게 주었던 증기시(贈妓詩), 기생들이 직접 남겼던 연시(戀詩) 등이 있다.
  • 2) '판소리'와 '소설'의 장르 혼합적 성격을 띠는 『춘향전』은 그 발생론적 기원과 이본 연구에 있어 활발한 논의를 양산하여왔다. 먼저 발생론적 기원을 살펴보자면, 18세기 중반 이후로 널리 향유된 『춘향전』은 일차적으로 다양한 근원설화 즉, 열녀 설화, 암행어사 설화, 신원(伸寃) 설화, 염정 설화, 신물교환 설화, 수기(手記) 설화, 몽상(夢祥) 설화 등에 기원하고 있다. 계통적으로 볼 때 『춘향전』은 크게 '설화 판소리 소설'로 발전되었다는 설과 '설화 소설 판소리'로 전이되었다는 두 가지 설로 양분된다. 『춘향전』은 1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층위의 이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와 독자의 계층적 차이를 드러내는 한문본과 국문본이 있으며, 장르적으로 한시, 소설, 희곡, 판소리 등 다양한 형태의 이본들이 존재한다. 또한 필사본과 판각본으로 나눌 때, 중기 이본인 방각본의 경우, 유통경로와 특정 화소의 유무 및 내용의 부분적 차이에 따라 '경판계'와 '완판계'로 분류된다.
  • 3) 김태준(1905~1949)은 1930년대 국내 최초의 비교문학적 국문학 연구서인 『조선 소설사』 및 한문학과 국문학을 접목시킨 『조선 한문학사』를 통해 한국 문학사를 정립했다. 천태산인(天台山人)이란 호가 있었다.
  • 4) '섹슈얼리티(sexuality)'는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 성별(gender)'의 국면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성의 다층적인 측면을 포함하는 용어다. 성적 행위, 성에 관한 생각들, 성적 욕망, 나아가 성이 사회 제도와 관계 맺는 양상 전반을 포괄한다.
  • 5) '불망기(不忘記)'는 관습적으로 기생들이 양반과의 하룻밤 만남에서 받은 서약서로서, 신분적으로 약자인 기생이 상대 남성으로부터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받은 일종의 증표이다.
  • 6) 이해조(1869~1927)는 신소설가로서 대표작 『자유종』(1910)과 『화의 혈』(1910)을 포함하여 30여 편에 가까운 신소설을 남겼다. 호는 열재(悅齋) 또는 우산거사(牛山居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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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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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고전 입문서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오늘의 눈으로 한국의 고전을 다시 살펴보는 책이다. 고전읽기의 범람 속에서 우리 고전을 집대성하고, 우리 사유의 뿌리를 찾아가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7인의 편찬위원회가 각계 전문가들의 추천을 결산하여 선정한 120종의 고전을 8권에 나누어 담았다.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에는 각 분야에서 돋보이는 역량과 필력을 자랑하는 107인의 저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였다. 고전의 전체적인 맥락을 살펴보며, 고전이 함축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의식을 오늘 우리의 문제 상황에서 풀어내고 있다. 우리의 시각으로 고전을 재창조하는 살아 있는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이번 『고전문학』편에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문학자와 한문학자들이 총출동하여 한국고전문학사를 통틀어 빛나는 고전 41편을 재조명한다. 1권에서는 신화, 민담, 여행기 등 14종의 고전을 통해 세상의 시작에서부터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는 일상의 이야기, 그리고 더 넓은 세계에 대한 옛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엿볼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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