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톤 정경의 정신나간 작곡가와 Kiss하다` 中 `질문에 답하다`

Q.어려운 질문임을 알지만 드리고 싶은 질문이다. 방금 오페라마 공연을 통해서 슈베르트 `마왕`의 이야기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마왕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는 집에 도착 후, 아들의 죽음을 알게 되는데, 아버지가 큰 충격을 받았을 것 같다. 사실 제 아버지가 최근에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가족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딸로서 그 말씀을 다 공감하지 못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된다. 만약 본인이 슈베르트 마왕 스토리에서 `아버지`였다면, 죽기 전 아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A.슈베르트의 가곡에서 나오는 마왕은 대단히 교활하다. 강한 아버지에게는 보이고 들리지 않으며, 약한 어린 아들에게만 보이고 들린다. 마왕의 유혹을 마주한 아들은 두려움으로 아버지에게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아들의 상황을 알 수 없는 아버지는 처음에 걱정을 하다가 반복되는 아들의 패턴에 사실 짜증도 났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이후 말을 열심히 몰아 집에 도착했을 때 죽어있는 아들을 발견한 것이다. 슈베르트의 마왕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의 도움을 외면한 이후 아들의 죽음을 맞이했고, 질문자는 생전 아버님의 말씀에 공감해드리지 못한 것이 떠올라 이 질문을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후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며 후회하는 모습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필자 같은 일개 예술가가 감히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얘기하자면, 인간은 한치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게는 두 사람의 다툼부터 가정의 분쟁, 지역의 갈등, 나아가 국가 간의 전쟁으로도 번지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와 일본의 모습을 보면, 경제라는 보이지 않는 총칼로 사실상 전쟁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차분하게 살펴보면 인간은 아주 사소한 마음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이내 "상대방보다 내가 더 옳다." 라는 자세를 취하며 결국 실수를 키운다. 어찌 보면 인간과 인간이기에 부족함을 인정하며, 공존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말이다.

인간은 본인의 의지가 제외된 채 어느 순간 태어나 부모님의 자식이 되었고 앞으로 언제 눈을 감을지 모른다. 아무리 인간의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하루가 다르게 의학과 과학기술이 발전될 지라도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해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아마 필자가 질문자과 같은 입장이었다 할지라도 매번 같은 말씀, 혹은 알 수 없는 말씀을 계속 하시는 아버지에게 온전히 집중하거나 공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먼저 가족의 죽음을 겪은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가족이 더 이상 나와 함께 호흡하지 않는 다른 세상으로 떠났을 때 비로소 스쳐지나간 그 순간들을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슈베르트 마왕에 나오는 아버지의 심정도 비슷했으리라 생각한다. 만약 내 아들에게 정말 마왕이 나타나 곧 아들이 죽을 것 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아버지는 당연히 말에서 내려 결말과는 다른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의미 없는 가정일 뿐이며 이미 일이 일어난 후에는 아무 쓸모없는 탄식과 후회가 될 뿐이다. 안타깝지만 필자가 아버지와 같은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도움을 청하는 아들에게 아무 말을 못해준 채 사악한 마왕에게 아들을 빼앗겼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다는 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픔이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초연해지며, 그 먹먹함은 언어로 표현하기 어렵다. 하지만 질문자는 공연장에 오늘 처음 만나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두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그 고통과 후회를 고백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전하는 용기 있는 자식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있을지를 생각했으면 한다. 더 이상 아버지의 `죽기 전` 상황과 굴레에서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앞으로의 삶을 더 기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한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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