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리톤 정경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고전적인 형태의 오페라가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시도는 오페라라는 장르의 생존을 위해 당연한 흐름이다. 현대적인 음향 시스템,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기 성악가의 섭외, 관객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극 중 배경의 현대화 등 대중에게 접근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오페라의 미래가 밝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술가로서 유일하게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현대의 대중문화와 달리 오페라의 경우 이미 ‘고전’으로서의 입지를 다진 상황이므로 대중들의 새로운 관심을 받지는 못할지라도 완전한 절명(絶命)에 이르는 일은 없다는 점이다.

오페라라는 장르의 가장 큰 딜레마는 바로 ‘오페라’ 그 자체의 본질에 있다. 귀에 쏙쏙 박히는 가사, 현대인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이야기와 배경, 유명 연예인을 앞세운 뮤지컬 등의 인기를 수십 세기 전에 유행한 오페라가 따라잡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오페라를 개선하려는 어설픈 시도는 현대의 대중들에게 쉽게 어필하지 못하며, 파격적인 시도는 오페라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기 때문이다. 오페라라는 장르를 오랜 세월 지켜 온 울타리와 틀이 이제는 오페라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는 것을 막는 장벽이자 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는 뮤지컬뿐만 아니라 영상, 음악 공유 플랫폼들까지 등장한, 오페라가 유행하던 시대와는 그야말로 시공간의 개념이 완전히 뒤바뀌어버린 시대가 도래했다. 값비싼 티켓을 구매하여 정해진 시간까지 극장을 찾아가 온전히 몇 시간을 투자해 오페라를 관람하고 관객들끼리 작품을 품평하며 친목을 나누는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진행한 예술 분야 수업을 수강한 약 300명에 달하는 비전공 대학생들에게 설문한 결과 한 해 동안 직접 돈을 지불하여 오페라를 관람한 사람은 놀랍게도 단 한 명조차 없었다.

우리는 과연 오페라의 미래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일까.

◇ 미래의 오페라

원작으로의 완전한 회귀가 오페라의 재부흥을 위한 정답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이러한 시도는 초반 잠시 주목을 받을 수는 있으나 그 인기가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방편이라고 볼 수 없다. 새롭고 자극적인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오페라는 회귀와 파격 사이를 끝없이 오갈 뿐이다.

이제껏 오페라 이야기를 풀어내어 온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의 앞날과 앞날의 오페라를 생각하자면 정신이 아득해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나는 오페라라는 장르가 다시 한 번 숨을 고르고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오페라’ 그 자체에 내재한다고 믿는다. 다만 오페라가 현대 사회와 대중들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이유는 이제껏 오페라를 살리려던 대부분의 노력이 오페라라는 장르의 ‘본질’이 아닌 ‘정의(精義)’와 ‘시대’에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중세 유럽과 근세 유럽에서 유행한, 모든 대사가 노래로 이루어진, 이탈리아 음악극의 흐름을 따르는 종합무대예술’이라는 오페라의 사전적 정의와 국경 및 시대적인 틀은 매우 강력했다. 너무나 강력한 나머지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대중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그 자신의 정의를 고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페라를 아끼고 사랑하는 현대의 예술인으로서 이러한 정의는 오페라의 본질을 찌르기보다는 그 외형을 묘사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싶다.

오페라 창작의 본질적인 정의란 해당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기득권층에 대한 정서와 비판을 해학과 음악, 그리고 문학적인 필치로 풀어내어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의미한다. 나아가 오페라 자체의 본질이란 시대를 향한 비판과 풍자, 그리고 해학이며 때로는 당대 시민, 국민들의 시름과 한을 잠시 내려놓고 해소하기 위한 마당과도 같다.

모든 일의 흐름은 그 본질을 어떻게 정의하고 전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법이다. 우리 예술인들은 더 이상 유럽, 중세, 근세 등의 오페라의 틀과 외양에만 치중하고 매달려서는 안 된다. 한 발 앞서 오페라의 본질을 직시하고 스스로 오페라를 재정의하는 작업을 선행하지 않고서는 결코 미래의 새로운 오페라도, 오페라의 미래도 발견할 수 없다. 즉 고전의 오페라를 지키고자 한다면 그것을 매력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방법과 새로운 통로가 필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오페라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언젠가 ‘당대’로 불릴 이 현대 사회를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각박한 흐름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한과 괴로움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혼신을 바쳐야 한다. 때로는 오페라가 아니라는 비난도 들을 것이며, 때로는 괴작이라는 평이 날아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오페라라는 장르가 수백 년 전부터 앞장서서 객석의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고, 놀라게 하던 바로 그 원형적인 정신이며 신념이다.

인류문화세계란 무엇인가. 예술작품을 관람하고 공간을 나서는 이들이 보다 밝은 얼굴로,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삶의 무게와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작품이 누군가에게 오페라라고 불리건 다른 무언가로 불리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오페라는 항상 우리 예술인들이 수백 년 전부터 관객, 대중, 나아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향해 바치던 ‘위로’이자 ‘응원’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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