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콘텐츠로 풀어보는 오페라 이야기

▲ 바리톤 정경 교수 (사진=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오페라에 대한 가장 흔한 편견 중 하나는 오페라가 오로지 사회 상류층만이 즐기던 예술 장르였다는 인식이다. 사실 이를 완전히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다. 대다수 오페라 작품은 귀족, 혹은 갑부들의 저택을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오페라에 담긴 이야기의 핵심적인 배경 소재는 대부분 '어느 귀족의 저택'이라는 공간적 설정, 그리고 '옛날 옛적'이라는 시간적 설정을 마치 암묵적인 약속처럼 활용했다. 이에 더해 이야기 진행에 필요한 경우 '고대의 신전', '고대의 왕궁' 정도 배경을 추가적으로 이용하곤 했다. 이러한 귀족적인 배경 설정으로 인해 오페라 작품은 화려한 무대 의상과 장치로 치장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오페라는 귀족들만이 향유하던 문화에서 대중을 향해 성큼 다가서기 시작한다. 오페라가 상류층만의 문화라는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실질적인 시도가 당대 예술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 결과 일반 시민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일상이나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다루는 오페라 작품들이 하나둘씩 탄생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오페라 대중화의 흐름 가운데에는 걸출한 작곡가 자코모 푸치니가 있었다.

그가 그린 작품 속 주인공은 한겨울 추위에 땔감을 살 수도 없는 가난뱅이였으며, 결국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난로 안에 던져 넣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몽상가였다. 기존의 오페라 무대를 휘어잡던 휘황찬란한 궁전이나 의상이 아닌, 누더기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추위에 떨면서도 진정한 자유사상을 꿈꾸는 이들. 그리고 그들 사이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바로 오페라 '라 보엠'이다.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은 처음으로 서민이 주인공이 되는, 누구나 배역에 몰입하여 즐길 수 있는 현실적인 오페라를 만나게 되었다.

자코모 푸치니는 1858년 12월 22일 이탈리아의 루카에서 태어났다. 명성 높은 음악가이자 음악학교 교사였던 아버지는 그가 불과 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을 무렵 세상을 떠났고, 푸치니는 유년 시절을 어머니와 누이들 틈에서 보내게 됐다.

그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두각을 보일 정도의 재능을 선보이지는 못했다. 푸치니는 공부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놀기만을 좋아해 그의 어머니가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열 살 무렵 우연히 교회 합창단에 들어갈 기회를 맞이한 푸치니는 아버지 문하생이던 안젤로니의 열성적인 지도와 어머니의 교육열로 음악적 재능을 싹틔우기 시작한다. 16세에는 오르간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교회의 오르간 연주나 결혼식 피로연, 무도회 등의 연주에 참여하면서 음악 공부를 병행했다.

자신의 진로를 모색하던 열일곱 살 푸치니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한다. 바로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관람하게 된 것이다. 푸치니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왕이라 불리던 거장 베르디의 작품에 깊이 빠져들었고, 관람을 마치고 나오며 평생을 오페라 작곡가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 위해 그가 첫 목표로 삼은 것은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당시 베르디의 뒤를 이을 오페라 작곡가로 평가받던 폰키엘리의 밑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푸치니는 이탈리아 여왕이 하사한 후원금을 받게 되어 무사히 밀라노 음악원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의 다른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착실히 실력을 키워나갔다.

푸치니를 눈여겨보던 폰키엘리는 그에게 창작 오페라 공모에 도전해볼 것을 권한다. 이때 작곡한 작품이 바로 푸치니의 첫 번째 오페라인 '빌리(Le Villi)'였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공모에서 당선에 실패하지만 다른 행운이 푸치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날 푸치니는 이탈리아 오페라 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리코르디 출판사의 연락을 받게 된다. 처녀작 오페라 '빌리'의 악보를 출판하고 공연까지 제작하여 무대에 올리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푸치니는 순식간에 오페라 작곡가 지망생에서 어엿한 프로 작곡가로 데뷔하게 된다.

오페라 '빌리'를 발판 삼아 푸치니는 더욱 높이 도약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 작품의 튼튼한 바탕이 될 좋은 작가를 물색했고 마침내 극본가인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사를 만나게 된다. 푸치니와 이 콤비는 '마농 레스코'를 시작으로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등 오페라 역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차례로 발표한다. 이 여정을 통해 푸치니는 마침내 '베르디를 계승할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푸치니가 창작한 오페라의 소재와 주제는 만인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심금을 울릴 만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귀족들의 일상, 사회에서 성공을 거둔 이들의 이야기, 고급스러운 의상과 화려한 무대가 수놓던 기존의 오페라와 확연히 달랐다.

푸치니는 기존의 오페라 작품들이 다루던 세계를 떠받치고 있던 아래쪽의 세계를 바라보고, 무대 위에 그려냈다. 서민들, 성공하지 못한 이들, 일상화된 실패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사실적인 모습과 그러한 혼돈 속에서도 꽃피는 낭만을 가감 없이 담고자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푸치니의 오페라에는 넘치는 인간미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시선이 구석구석까지 담기게 되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인 오페라 '라 보엠'은 푸치니의 따뜻한 휴머니즘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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