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콘텐츠로 풀어보는 오페라 이야기

▲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서 약장수(Dulcamara)로 출연한 바리톤 정경 교수 (사진=오페라마예술경영연구소)

(서울=국제뉴스) 정경 칼럼니스트 = 낭만주의 시대로 불리는 19세기의 예술가들은 지역적인 주제에 흥미가 많았다. 예술인들은 미술, 음악, 문학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지역마다 감추어진 독특한 풍광과 색채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 결과는 민요, 신화, 전설 등 각 지역에서 전승되는 문화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문화의 흐름에서 오페라도 빼놓을 수 없었다.

오페라 작곡가와 작가들은 신화나 전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응용하여 새로운 무대를 장식할 각본에 녹여내고자 힘썼다. 이 시기에 탄생한 대표작으로는 로시니의 오페라 작품인 '호수의 여인'이나 벨리니의 '노르마'를 꼽을 수 있다. 이후 바그너가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니벨룽겐의 반지'와 같은 걸작을 남기기도 했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 역시 지역색을 중시하던 이 시기에 탄생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켈트의 비극 신화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비극적 로맨스의 원형 격인 작품으로 로미오와 줄리엣 등 수많은 작품이 이에 영향을 받았다.

도니제티의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이 전설을 전반적인 줄거리의 모티브로 삼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보다 가볍게 각색한 작품이다. 신화로서 전승되어 오던 이야기와 소재를 바탕으로 전원의 풍경을 유쾌하게 그려낸 이 오페라는 멜로드라마의 전형을 보여주며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작곡 기간이 약 2주밖에 걸리지 않았고, 이는 속필 작곡가로 유명한 도니제티의 진가가 드러난 덕이었다. 1832년 봄, 공연 예정작이 불발된 카노비아나 극장의 다급한 의뢰를 받아들인 도니제티에겐 주어진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극장장은 도니제티를 찾아가 이전 작품을 적당히 짜깁기해도 좋으니 기한만 맞춰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도니제티는 아예 새로운 작품을 제시간에 맞추어 가져오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도니제티는 극장장과 헤어지는 길로 '안나 볼레나'를 함께 작업한 극본가인 펠리체 로마니를 찾아간다. 도니제티는 로마니에게 일주일 안에 새로운 대본을 써달라며 고집을 부렸고, 그의 황당한 요청에 로마니는 기존의 다른 대본을 고쳐 쓰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그들은 파리에서 이미 큰 인기를 거둔 바 있는 오베르의 오페라 작품 '미약'에 주목했다. '미약'의 핵심 모티프는 이미 유럽에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위험부담이 덜했고, 무엇보다 이미 대중들에게 어필이 성공한 바 있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2주 만에 급조된 오페라가 바로 '사랑의 묘약'이다.

1832년 5월 12일, 오페라 '사랑의 묘약'의 첫 공연이 카노비아나 극장의 무대에서 펼쳐진다. 급조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오늘날까지 무려 200년 가까이 살아남는다. 이 작품은 다른 오페라와 차별화되는 부분이 명확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밝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은 희극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희극 오페라인 오페라 부파의 전통에 갇혀있지도 않았다.

이 사랑 이야기에는 응징해야 할 악이 없다. 날카로운 풍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어떤 영웅도 등장하지 않으며, 그저 소박한 시골 총각과 처녀의 사랑이야기가 펼쳐질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관객들의 머릿속에서 ‘오페라는 곧 장엄하고 사회비판적이며 권선징악적이어야 한다’는 사고의 틀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즉 '사랑의 묘약'은 기존 희극과는 다른 '멜로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셈이었다.

오늘날의 TV 드라마처럼 웃길 땐 웃기고 아름다울 땐 아름다우며, 슬플 땐 슬픈 작품의 기원이 바로 오페라 '사랑의 묘약'이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진행을 지나치게 늘어뜨리거나 재촉하지 않으며 경박한 주제를 다루지도, 심각한 주제만을 다루지도 않는다. 당시로선 명품 드라마의 조건을 모두 충실하게 갖춘 작품이자 아름다운 음악까지 들을 수 있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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