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丁經, Claudio Jung)(www.claudiojung.com)

바리톤 성악가.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사)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www.operama.org) 소장으로 한세대학교 예술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 ‘오페라마 시각(始覺)’.

▲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정경 소장

배고픈 배우, 궁핍한 화가, 추운 연습실의 무용수. 그리 낯설지 않은 장면일 것이다. 예술을 업으로 삼은 이들의 가난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리라.

그러나 여타 직종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들 역시 보다 나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해 금전적 가치를 필요로 한다. 돈이 없다고 해서 예술이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은 부(富)를 비료 삼아 성장할 수밖에 없는 상업적인 측면 역시 갖고 있다.

르네상스와 같은 문화 예술의 부흥기가 예술계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진 시점에 등장했다는 것이 좋은 증거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재능기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활용해 공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부로 예술계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한다. 순수 예술을 향유하기 어려운 대중이 경제적인 부담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작품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예술인들의 고뇌 속에 탄생한 작품을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채 누리고자 하는 흐름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예술인들을 겁탈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내게도 "노래 한 번 불러주는 게 그리 어려우냐"며 아무런 보수 없이 공연을 요구하는 이들을 만난 경험이 있다.

나에게 있어 노래란, 태어나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 정신력을 할애하여 갈고 닦은 고유한 기술과 재능이다. 그러한 투자와 헌신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이는 결코 있을 수 없는 무례한 언사였던 셈이다.

나는 후배 예술인들을 위해서라도 보수를 받고 노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경은 돈을 전혀 받지 않고 공연해줬는데 자네는 어떻게 할 것인가?”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는 재능 기부라는 허울 하에 예술인이 공멸하는 길을 택하고 마는 꼴이 되기에.

이처럼 ‘돈’은 인간의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의 발전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속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믿음이 예술 정신의 기저에 깔린 탓에 대다수의 예술인은 세속적인 가치에 대한 언급을 꺼린다. 나는 예술의 순수성에 대한 믿음을 존중하지만 지나치게 그에 묶이거나 고립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금전적 가치 창출을 궁극의 목표로 삼은 예술 작품에는 깊이 있는 철학이 담길 수 없다. 이와 더불어 충분한 자본이 투자되지 않은 작품 역시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즉, 중요한 것은 예술적 순수성과 성장 동력인 금전 사이의 ‘균형’이다.

바로 이 균형을 찾아 나아가는 여정이 내가 이름 붙인 ‘예술상인’이 가야 할 길이다. 돈에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가와 예술을 논하는 데 거리낌 없는 상인. 상반된 두 인물이 평화로운 공존을 이룩할 때, 이 여정은 비로소 그 막을 내릴 것이다.

예술과 상업이 서로를 존중하는 '예술상인의 유토피아'. 배부른 성악가는 더 좋은 노래를, 따뜻한 곳에서 붓을 놀리는 화가는 더 좋은 그림을, 좋은 신발을 신은 무용수는 더 아름다운 춤을 추는 곳. 정경은 그렇게 이 세상이 더욱 좋은 예술 작품들로 가득해질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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