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丁經, Claudio Jung)(www.claudiojung.com)

바리톤 성악가.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사)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www.operama.org) 소장으로 한세대학교 예술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 '오페라마 시각(始覺)'.

▲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정경 소장.

삶에는 각자가 꿈꾸는 이상향이 존재한다. 거창한 모양새가 아닐지라도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상을 그려보는 것이 모름지기 인간으로서의 본능일 것이다.

저마다 그려보는 유토피아의 모습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형태가 결정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삶 자체가 정의된다.

예술인이란 보다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유토피아의 청사진을 품고 이를 온전히 표현해내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필연적으로 집단이 존재하고, 집단에서는 '갈등'이라는 형태로 문제점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점차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전에 없던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언제 터질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회적 뇌관들이 형성된 것은 결코 먹고 살기 급급했던 시절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흐름이다. 조심스럽지만 바로 이 시점이 이상향을 논할 가장 적기가 아닐까.

예술상인으로서 이상향을 이야기할 때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바로 ‘역할’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현실적인 문제와 제약에 부딪혀 마음을 다치고, 그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 속에서 예술상인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이란 감히 그들에게 직접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모범이 될 수 있는 '근본적인 인간적 가치에 무게중심을 둔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을 예술작품으로써 깎아내고 다듬어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가장 인간다운 인간은 어떤 생각과 결론을 취할 것인가?' 이는 내가 예술상인으로서 제공하고자 하는 모든 예술작품, 콘텐츠의 근간이 되는 화두이자 인간이 또 다른 인간 존재에 던질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의문이다.

현실적인 미로에 갇혀 있는 이들을 관객 삼아 무대 위 가상의 인물이 현실과 유사한 미로를 헤쳐 나가는 모습을 그려낸다는 것은 이미 극장에서 유토피아가 펼쳐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객석의 대중이, 무대 뒤의 기획자가 각자의 올바른 위치에서 자신이 선택한 역할을 조화롭게 수행해내는 그림은 이미 그 자체로 이상적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제는 '삶'이라는 공연을 마주함에 있어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배우들, 무엇을 취하고 버려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는 관객들, 올바른 가치를 세상에 전달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기획자들에 의해 빚어지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전적 정의인 '이상향'을 제쳐두고도 나는 개인적으로 유토피아를 '예술작품과 올바르게 만났을 때 터지는 희열'이라 정의한다.

저마다의 삶은 변수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태어나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뿐, 그 이외의 모든 손짓 하나 생각 하나조차 상대적이고 변화무쌍한 것이라 믿는다. 

따라서 모든 이에게 동일한 감동과 의미로 다가갈 수 있는 예술 작품이란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이라는 개성적인 존재는 자신의 영혼에 영향력을 끼칠 특별한 작품을 본능적으로 항상 찾아 헤매고 있다.

예술인으로서, 나아가 예술상인으로서의 사명이란 이처럼 뿌리 깊은 인간 내면의 갈망을 큰 힘 들이지 않고, 먼 길 돌지 않고 해갈시킬 수 있는 ‘우물’이 스스로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유토피아를 꿈꾼다. 오로지 예술에 몰두하는 예술가, 그러한 예술가를 편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관객과 후원자들, 이들을 바탕으로 마음껏 고민하며 다음 세상의 밑그림과 이상을 그려내는 기획자가 따로 또 함께 어우러지는 곳. 조금 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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