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소장이자 바리톤 성악가로 왕성한 활동 중인 정경 박사(Ph.D). 그가 무릇 예술인의 삶이란 어떤 것이며, 나아가 고전 예술인이 현대 사회를 수놓은 자본주의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지를 뉴스인(옛 뉴시스헬스) [예술상인] 칼럼을 통해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정경 소장

때로는 갑갑할 때가 있다. 하루하루 마주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거나 눈앞에 펼쳐지는 흐름에 개운치 못할 때마다 나는 모든 것을 잠시 내려두고 연극이나 영화, 뮤지컬 등을 관람하곤 한다. 무작정 찾아 나선 예술작품들 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답이나 힌트를 손쉽게 얻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에 대한 답이나 해결책이 항상 같은 선상에 있으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막상 어떤 상황에 봉착하게 되면 그에 매달리게 되고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논리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있어 현안과 전혀 무관한, 오히려 정반대 편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예술작품이나 문화 활동에 삶의 해답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어쩌면 미신처럼 느껴질 지도 모르는 일이다.

예술인으로서 수많은 무대에 서고,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루다 보니 어느덧 ‘우연’을 믿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무대 위에 오르는 모든 스토리와 소품 하나하나에는 다만 관객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뿐 각각의 의미와 유기적인 연결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기획자의 관점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 않거나 일견 우연처럼 보이는 모든 사건들에도 어떠한 ‘필연성’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즉 현실 속의 갈등을 겪으며 벽에 가로막혀 있는 이가 눈을 돌렸을 때 그의 시선을 휘어잡는 예술작품에는 ‘현재의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나 실마리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심신이 지쳐 기운의 전환이 필요할 때면 나는 대학로의 소극장을 찾는다. 이젠 너무나도 유명해진 뮤지컬 ‘빨래’를 관람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열 차례 넘게 관람했음에도 이처럼 ‘코드가 맞는’ 걸작은 어김없이 눈물을 자아낸다.

한창 바쁘게 고민하고 일처리를 해야 할 시기임에도 뮤지컬 관람에 시간을 투자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깊은 철학과 뛰어난 표현력이 조화를 이루는 공연에 몰입하면서 정리하기에 버거울 정도로 많이 쌓인 정보와 생각들, 그로부터 비롯되는 불필요할 정도로 예민한 감정들이 한 차례 깨끗이 정돈되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이 그 자체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직접적인 힌트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뿌연 안개나 장애물과도 같았던 요소들을 씻어내 주기에, 훨씬 가볍고 명쾌한 마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중요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많은 이들이 ‘예술’과 ‘현실’이 동떨어져 있는 영역이라는 오해를 품고 있다. 그러나 예술의 기원과 그 주제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는 가장 우아하게 표현된 인간 정신의 표현이자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무관해 보이는 예술적 매개들이 현실 속에서 고민에 빠진 우리에게 어떤 답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오랜 세월 축적된 인간의 경험과 역사, 그리고 지혜를 고도로 농축하여 발현해 낸 ‘예술작품’인 까닭이 아닐까.

이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예술작품과 현실 사이에 놓인 연결고리를 가늠하고자 하는 관점은 예술인으로서, 그리고 예술상인으로서의 길을 추구하는 데 있어 큰 동기를 부여해준다. 만일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일의 궁극적인 목표가 어떤 무대를 보다 완벽하게, 아름답게 만들어 관객들의 순간적인 즐거움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뿐이었다면 이는 ‘깊이’가 턱없이 부족한 결과물만을 양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작품이, 고뇌가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지쳐있는 이들에게 ‘예기치 못했던’ 실마리나 희망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는 자각은 예술인으로서 더욱 깊고 짜임새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도록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시에, 예술상인으로서 보다 많은 이들이 좋은 예술을 향유하고 음미할 수 있는 환경을 창출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해 준다.

현실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없다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주위에 어떤 예술이 존재하는지 둘러보자. 어쩌면, 답은 그 안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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