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丁經, Claudio Jung)(www.claudiojung.com)
바리톤 성악가. 오페라와 드라마를 융합한 ‘오페라마(Operama)’를 창시했으며, 예술경영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사)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www.operama.org) 소장으로 한세대학교 예술경영학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 ‘오페라마 시각(始覺)’.

▲ 오페라마 예술경영연구소 정경 소장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은 시대를 막론하고 여러 학문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유교에서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을 인간의 본성으로 보았는데 특히 맹자는 금수(禽獸)와는 다르게 인간이 지닌 인의예지(仁義禮智)를 인간다움의 시작이라고 보았고, 서양 철학자 플라톤은 욕망, 감정, 지식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부터 인간다움이 비롯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예술의 궁극적 목표 역시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과 표현이다. 예술가의 작품 활동이란 인간의 적나라한 감정들뿐 아니라 철학, 사유까지 아우르는 '인간성의 중추'를 어떠한 상(像)에 담아 구체화시키는 작업과 같다.
 
예술상인이 추구하는 길은 이처럼 작품에 담긴 근본적인 인간성을 보다 자연스럽고 원활하게,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로 대중에게 공급하기 위한 방도를 모색하는 것이다.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에 치여 대중들이 쉬이 잊어버리는 근본적인 인간다움을 예술과의 접점을 통해 환기하고 깨닫게 하는 것. 나 또한 늘 그와 같은 과정을 통해 진정한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한다.

얼마 전 밀양에서 열린 한 공연이 끝난 뒤에 있었던 일이다. 무대를 마치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려던 찰나, 한 어르신이 달려와 함께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는지 물어오셨다.

그 분은 예전에 나의 오페라마 특강을 우연히 들었는데 내용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기억해두었다가 나의 공연 소식을 듣고 반가워 찾아왔다고 하셨다. 그리고 함께 온 아들이 조금 늦는 바람에 나의 연주를 놓쳤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예술상인으로서 이전에 소개한 칼럼들을 통해 나는 예술과 상업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온 바 있다.

예술은 돈을 사랑하며 합당한 대우가 없는 작품 활동은 있을 수 없다는 신념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예술계에는 여전히 커미션(중개료)을 담보로 장난을 치는 사기꾼들과 '재능기부'라는 이름의 ‘재능착취’가 성행하고 있다.
 
어둠이 내려앉던 밀양의 거리. 무대나 관객석은 물론 조명 하나 없던 그 거리에서 나는 청년들의 젊음을 축복하는 노래, '가우데아무스 이기투르(Gaudeamus Igitur)'를 즉흥적으로 열창했다.

오로지 두 사람을 위해. 순수한 애정과 열정으로 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달려왔다는 두 사람의 마음은 내게 있어 어느 화려한 화환이나 무대보다도 값지고 소중한 것이었다. 예술가로서, 예술상인으로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에 대한 답을 나는 예술의 전당도, 카네기 홀도, 스칼라 극장도 아닌 밀양의 어느 어둑한 길 위에서 얻었다.
 
인간다움이란, 나의 실력과 위상이 지금과 조금 달라진다 하여도 결코 변하지 않을 어떠한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달려온 이가 아쉬움을 지닌 채 되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신념이다.

무대나 반주가 없어도, 어둑한 길 위에서도 기꺼이 나의 목소리를 선사할 수 있는 것, 바로 내가 실천하고 지켜낼 수 있는 가장 존엄한 인간다움이 아닐까.

삶의 진리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 모든 이에게 적용될 수 있는 절대적인 인간다움의 기준을 정의하거나 찾아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개인의 취향, 개인의 정의, 저마다 삶에 있어서의 진리를 찾아내고 추구하듯이 인간다움이라는 가치 역시 선택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자신의 내면에서 가장 지켜내고 싶은 인간으로서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수 있다면, 우리 자신의 인간다움은 안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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